이상의 도쿄행

저자 | 구선아
출판사 | 알비
출간일 | 2019.10.28
페이지 | 256
ISBN | 9791186173718

구매하기

암울한 시대, 여섯 지식인의 세계 방방곡곡 유람기

『이상의 도쿄행』에서 ‘이상’은 책에 실린 근대 소설가이자 시인 이상李箱과 완전한 삶, 이상적인 삶을 의미하는 이상理想의 중의어로 표현하였다. 1920년대 문화정책으로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상실했지만, 그 속에서도 개벽, 별건곤, 삼천리와도 같은 대중잡지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철도와 항로가 개척되었으나 여전히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대였고, 다양한 목적으로 세계를 보고 느낀 정치, 예술, 문학, 교육계 지식인들은 이러한 경험을 잡지에 연재하며 대중들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고자 노력했다. 그중 여섯 지식인의 기행문을 원문을 최대한 살려 재구성하였으며, 동시대에 그려진 동서양의 근대 미술 작품 여섯 점을 함께 수록하였다. 단순히 보고 느낀 것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 100년 전 세계 각국의 모습을 자세하고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당시 다른 나라로 이주한 한국인들이 터전을 잡는 모습이나 가난한 유학생의 생활처럼 흥미로운 상황들도 엿볼 수 있다. 100년 전 그들이 느끼고 체험한 세계를 알아가는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기록인 동시에, 그 세계를 누비며 고뇌하던 그들의 이상을 따라 우리가 겪지 못한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의 차가운 현실과 뒤엉킨 지식인들의 이상


– 기행문을 넘어선 지식인들의 100년 전 세계 보고서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하던 시대, 각자의 이상을 품고 세계로 떠난 6인의 기행문을 읽어볼 수 있다. 보고 느낀 점을 서술하는 것을 넘어, 너른 세계 속에서 취득한 지식을 통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답답한 현실을 극복 하고자하는 지식인들의 의지가 느껴지기에 단순히 기행문이라고만 하기에는 아쉬우며, 세계 보고서 또는 세계 탐구기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의 대규모 농작과 공장시설, 발전된 철도와 교통 시설, 수많은 교육 시설들을 꼼꼼히 기록하고,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거나 아일랜드 의회에 참석해 직접 조선의 현실을 알리는 민간 외교관의 모습을 기록하기도 했고, 일제의 치하에 있으나 일본을 경험하고 경제, 사회, 국민성을 세세하게 분석하며 장단을 가리어 당당하게 조국의 발전을 도모하자고 대중을 격려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유적지와 예술품에 대한 감상과 곳곳에서 터를 잡는 조선인들의 노력과 성과, 남의 집 고용살이까지 하며 배움을 갈망하는 유학생들의 힘겨움까지 자세하고 솔직한 그들의 이야기는 100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속에 들어간 듯 흥미롭고 생생하다.

조선 지식인들의 시선과 심상으로 바라본 세계 곳곳의 모습과 내면

100년 전 지식인들의 심상에 좀 더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원문을 최대한 살리며 한자와 일본어 발음, 근대어들을 현대어로 옮기고 읽기 편하게 재구성하였다. 현대어로 해석이 불가한 근대어들은 굳이 변환하지 않고 원문 고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고, 특히 주요 도시, 지명은 현재 사용하는 영문 표기를 함께하여 지금의 독자들도 알기 쉽게 하였다. 각 글에는 동시대를 살며 또 다른 이상을 꿈꾸던 나혜석, 김용조, 황술조의 한국 근대 미술 작품과 서양의 근대 미술 작품을 함께 수록하였다. 100년 전 그들이 느끼고 체험한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고뇌하던 그들의 이상을 글과 그림으로 따라가며, 조선 지식인들의 시선과 심상으로 바라본 세계 곳곳의 모습과 내면을 생생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서문 지식인의 심상으로 마주한 세계 도시
허헌 세계 일주 기행
박승철 독일 가는 길에
이광수 명문의 향미
성관호 내가 본 일본의 서울
이상 동경
노정일 세계 일주 산 넘고 물 건너

책 속으로

이렇게 할리우드가 유독 영화의 성지로 온 세계의 총애를 받게 된 까닭이 없는바 아니니 그곳은 춘하추동 사계절이 마치 봄철같이 모두 따듯하고 비나 눈 오는 날이라고는 적으며 산천도 아름다운 품이 미국서는 드문 터이다.
— 「허헌『세계 일주 기행』」중에서

파리는 세인이 세계 도회 중의 도회라 하여 가장 화려한 곳이다. 과연 와서 본 즉 모든 것이 이목을 즐겁게 한다. 인가의 미려함과 도로의 정연함과 그 위에 무수한 자동차가 기성이음을 발하지 않고 질주하는 것이 자동차 행렬을 보는 것 같으며, 야경으로 말해도 불야성을 이뤄서 원광을 보면 화재 난 것 같고, 그 평활하게 만들어 놓은 통로에 전광이 비추어서 번쩍거리는 것은 흡사히 거울을 보는 것 같다.
— 「박승철 『독일 가는 길에』」중에서

어쨌든 「이 도시는 몹시 가솔린 내가 나는구나!」가 동경의 첫인상이었다. 우리 같이 폐가 칠칠치 못한 인간은 우선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다. 입을 다물어도 벌려도 척 가솔린 내가 침투되어 버렸으니 무슨 음식이고 간에 얼마간의 가솔린 맛을 면할 수 없다. 그러면 동경 시민의 체취는 자동차와 비슷해져 간다.
— 「이상 『동경』」중에서

소천을 건너고 기적을 울릴 때마다 촌락의 노유들은 흰 수건을 흔들어 인사하며 전포에서 노동하는 늙은이들은 우수를 들어 경례도 한다. 나는 혼자 마음으로 저 노인들은 아마 링컨 씨와 같이 남북전쟁에 출역하였든 신사들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제일 이상하고 어여쁘게 보이는 것은 10세 내외의 소녀들이 이따금 자기들의 좌우 손을 입에 대었다가 앞으로 던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 의미를 몰랐다가 얼마 후에 알고 나도 키스를 보내 주었다. — 「노정일 『세계 일주 산 넘고 물 건너』」중에서